[영화리뷰] 여의도,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어떤 "영상물"에 대하여.

정신나간 영화얘기 2010. 12. 1. 02:58


기본영화정보

STAFF : 감독 - 송정우
CAST : 황우진 - 김태우 | 강정훈 - 박성웅 | 아내 - 황수정
DETAIL : 러닝타임 - 88분 | 관람등급 - 18세 관람가 | 홈페이지 - www.yeouido2010.co.kr
STORY : 사채 빚과 부친의 병원비,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힙겹게 살아오던 황우진은 자신이 믿었던 부하직원이 직속상사와 짜고 자신을 쫒아 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갑자기 나타난 어린시절 친구인 정훈과의 술자리 중 우진은 자신을 배신한 후배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정훈에게 하게 되고, 다음날 후배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후배의 갑작스런 죽음 후 우진에게도 갑작스러운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데...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예측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신개념 심리스릴러물 탄생!

위에 정리한 짤막한 줄거리와 "소사이어티 심리 스릴러"라 적혀 있는 포스터의 카피만으로도 눈치빠른 관객은 이 영화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반전인데) 이 영화는 그런 관객의 짐작을 한치도, 정말 한치도 배반하지 않고 똑바로만 달려간다.

일반적인 이야기, 누구나 끝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옛날옛적 먼 옛날에..."로 시작되는 고전 동화들은 누가 등장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만 읊어줘도 누구나 '아, 그 얘기!' 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은 "왜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들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가 사라지고 "재량"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정말 놀랍게도 그러한 "재량"이라는 것을 한 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영화의 모든 네러티브 (이미지, 문자, 대사, 음향, 음악... 심지어는 미장센, 조명, 배우의 연기 등 그야말로 "영화적 언어의 모든 것"들)는 이 뻔한 이야기를 고장난 라디오마냥 끊임없이 되풀이하기 위한 목적 하나에 오로지 매진한다. "무려 88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관객을 어두컴컴한 영화관 안에 가두어 두고 들으나마나 한 뻔한 얘기를 바로 귀 옆에서 핏대를 세워가며 고래고래 떠드는 격이다. 심리스릴러물이라니, 이건 스릴러 장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심리스릴러가 아니라 사회극이라고? 사회극으로 봐도 함량미달!

이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뻔뻔하게도 스스로를 심리스릴러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이 영화에 대해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이 영화를 "사회극"으로 볼 것을 촉구한다는 20자평을 씨네21 지면에 게재하며 5점 만점중 별점 3개를 주었다. 그러나 병자군이 보기에는, 이 영화를 사회극이라고 정의하는 것 역시 사회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사회극으로 볼려면 영화속 등장인물의 상황이 사회적 환경이나 사회문제와의 관계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래서 사회적 관계의 해소 없이는 그 상황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진이 처한 상황이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먹먹한 상황임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역시 "저 인간 왜 저런데?"라는 짜증만 유발시킨다[각주:1]

다시한번 말하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그저 클리세일 뿐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심리스릴러로 윤색하기 위한 어떤 장치도, 사회극으로 만들기 위한 어떠한 설득의 과정도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이건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의 배우들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여러 편의 홍상수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 찌질남"의 왕좌에 등극한 김태우는 그야말로 찌질남의 절정을 보여주지만, 88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찌질남 연기는 그저 클리세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성웅 역의 강정훈 역시 등장하는 순간부터 '아, 저 친구는XX겠구나.'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XX연기로 이 클리세 영상물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표정만으로 퉁쳐버리는 황수정의 연기(라고 보기 힘들지만)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실 이 정도로 기본이 안된 영화에서는 배우가 아무리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고 해도 (최민식, 황정민, 고현정 등 연기에는 도다 텄다는 배우들을 다 가져다 썼다고 해도) 그 "혼신의 연기"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도대체 왜 이런 영화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영상물에 출연했냐"고, 정말로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정신병자군의 20자평
평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복용법
먹지 마세요.
  1. 어쩌면, 여의도라는 공간에서 실제 펀드매니져 일을 하고 있는 일군의 관객들은 이 영화의 제시를 보기만 해도 바로 공감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왜 저런 상황에까지 몰려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들도 우리와 같이 보통의 고민을 안고 사는 특별할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설득의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반전장치 역시 좀 더 철저하게 숨기던지,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어린시절 기억을 그 이유로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 강천규 2010.12.16 09:31 ADDR 수정/삭제 답글

    클리세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하는데, 일반적인 기준의 인터넷 이용자라면 당연히 아는 단어인건가요? 제가 무식한건가요?

    • Favicon of https://psychoic.tistory.com BlogIcon 정신병자 2010.12.16 21:21 신고 수정/삭제

      클리쉐이(cliche) 라는 일부 의미만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진부한 영어표현" 이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영국 미국인들인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닳고 닳은 표현"이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워낙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들이어서 학교나 교과서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처럼 뉴스나 드라마에서도 빠지지 않습니다. - N나라 지식인 내용 중에서

      클리세라 함은 위에 설명한 내용과 같이 "닳고 닳은 표현"이라 변역됩니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전개나 화면 구성 등을 총칭해서 보통 쓰이지요. 위 포스트에서도 같은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너무 흔하게 써왔기 때문에 "진부한" 표현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