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실명제? 웃기지 마시지!!!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2. 15:04
이 포스트는 지난 2006년 선거시기 인터넷실명제법안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작성했던 포스트입니다. 현재 상황에 안 맞는 부분도 많이 있지만, 관련이 있는 듯하여 다시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지난 2006년 4월 18일 인터넷실명제 폐지를 위한 연합기자회견때 사진입니다. 사진 중간에 이상한 청색모자 쓰고 있는 것이 병자군이군요...^^ (사진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인터넷 실명제를 하겠단다. 다른 때는 몰라도 선거 때에는 꼭 해야겠단다. 다른 얘기는 몰라도 정치 얘기를 할 때만큼은 꼭 해야 된단다.

인터넷에서 너무 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란다.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려서 대다수 "선량한"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 "참 일꾼"을 뽑지 못하고 "정치 사기꾼"만 뽑게 되기 때문이란다.

좋다, 그렇다고 쳐 보자. 그럼 과거 선거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괴문서"는 어떻게 할 꺼냐? 선거기간 중에 복사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복사가게 주인에게 신분증을 보여줘서 본인임을 확인받게 하고 복사하게 할 꺼냐?

 전화설문조사를 가장한 교묘한 불법선거운동은 또 어쩔꺼냐? 선서운동기간에는 가정용, 개인용 전화는 모두 막고 관공서의 전화만 열어놔서 신분확인 받은 사람만 전화할 수 있게 할 꺼냐?

식사 및 향응 제공 등의 불법선거운동 여전히 판을 친다. 그건 어쩔 꺼냐? 그러한 행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선거운동기간 동안 식당에서 다른 사람 밥값까지 계산하려고 하면 민증 확인하고 나중에 선관위가 불법선거운동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료 달라고 하면 재깍 찾아서 갔다주기 위해서 식당주인이 6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할 꺼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지금 시행한다고 하는 인터넷실명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정부가 정하는 인터넷 언론사에서 선거운동기간 동안 댓글 또는 게시판을 쓰고자 하는 경우에 행자부에서 제시하는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확인시스템을 거칠 수 있게 해야 한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초 500만원, 하루 초과시마다 100만원씩 과태료를 해당 언론사에게 부과한단다. (식당이나 복사집은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스캔해서 행자부에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만일 익명으로 작성된 글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경우, 해당 업체는 즉시 그 글을 삭제해야 한단다. 만일 삭제하지 않으면 최초 100만원, 하루 초과할 때마다 20만원씩 과태료를 부과한단다. (민번확인 안하고 복사를 하거나 밥을 먹었는데 그게 선거와 관련이 있는 일이었음이 밝혀지면 복사한 문건을 모두 수거하던지 먹은 밥을 토해놓게 해 놓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 실명확인만 받으면 무슨 말이든지 해도 좋다는 얘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실명확인을 거쳤다고 해도 근거없는 비방, 유언비어, 불법선거운동은 모두 기존의 법에 의해 처벌된다. 즉, 이 실명제법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근거없는 비방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은 추적해서 잡기가 너무 귀찮으니까 아주 손쉽게 잡아 보자는 거다. 이 얼마나 행정편의주의적인 생각인가?


익명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단다. 선거에 관련된 얘기만 아니라면, 삭제될 걱정도 없단다. "솔로몬의 지혜"를 찾았다고 기뻐 날뛰었을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선거에 관련되지 않는 얘기? "나는 한나라당이 이미지가 좋드라.", "저 후보가 공약을 참 잘 만든 것 같아"정도의 글도 익명이면 삭제 대상이다. 근거없는 비방, 유언비어, 불법선거운동이 아니더라도 실명인증을 받지 않으면 절대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다. 쉽게 얘기하면 주민번호 없는 사람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아뭇소리 말고 닥치고 앉아 있으라는 거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익명성 뒤에 숨은 사이버테러, 그래, 심각하다. 얼마전 임수경씨 아들에 관한 기사에 달린 댓글은 내가 봐도 섬찟했다.

어라?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건이 벌어진 게시판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의 댓글은 "실명인증"을 받고 가입한 "회원"만이 달 수 있다. 실명인증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패악적인 댓글을 남겼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실명제 하면 패악적인 댓글이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오히려 가장 섬뜻한 사례는 실명제게시판에서 생겼다.

개똥녀니, 철사마니, 최근의 PD수첩PD의 가족사진노출까지, 그러한 "패악의" 인터넷문화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까지 아주 쉽게 접근하고, 파괴한다.

어라? 이것도 이상한데? 그들이 어떻게 그처럼 쉽게 그러한 개인정보까지 입수한 거지? 진짜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사회라면 그러한 정보가 그리 쉽게 노출될 수 있었을까? PD수첩의 PD야 어느정도 공적 영역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일을 당했거니 하겠지만, 개똥녀? 철사마? 결코 공인은 아닐 텐데 말야... 오히려 그러한 개인정보를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 아닌가? 

뭐, 다 좋다! 아뭏든 나쁜 것은 나쁜 거여! 머리 복잡하니까 실명제가 도입되면 그런 나쁜일은 안 일어날 꺼라고 해 버리자! 그런 나쁜 일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건데, 좋다! 다 좋다!

근데 이것도 이상한데? 왜 하필이면 "정치"만이야? 정말 피터지게 당한 사람들은 다 보통 사람들인데, 왜 정치인만 비방하면 안되는데? 정말로 효과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면 우선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을 보호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정치인이 무슨 피해를 봤다는 거야? 지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꼬락서니는 많이 봤지만, 네티즌이 그 정치인들에게 뭘 어쨌는데? 혹시 이것들, 지들 욕 들어먹기 싫다고, 지들끼리 잘 살겠다는데 사사껀껀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네티즌이 너무 짜증나니까 법이라는 이름으로 한꺼번에 때려잡으려는 거 아냐?




하나씩 거꾸로 되짚어보자. 실명인증회원도 극도의 욕설을 서슴치 않았다는 사실은 그러한 욕설을 하는 이유가 실명제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막말 약간 섞어서 "미친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임수경이라는 인물에 대해 극도의 증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온라인상에서 표출되었을 뿐이다. 그 사람들이 그 기사를 지하철 한가운데에서, 종이신문에서 읽었다면 혼자말로 (그러나 주위 사람은 다 들리게끔) "이런 XX는 한번 당해봐야 돼" 라고 말하는 정도의 인간성밖에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조선일보라는 사이트는 마침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뭉치면 강해지는 인간의 속성상 서로 경쟁하듯이 마구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못된 인간들 처벌해야 하지 않냐고? 물론 처벌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인간들 잡기 쉽게 하기 위해서 모두 실명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바로 모든 네티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행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남자들은 모두 여성에게 언제든지 성폭력을 가할 수도 있는 잠재적 범죄자니까 모두 전자팔찌를 차고 어디에 있는지 경찰이 쉽게 알 수 있게 하자라고 하는 거다. 그렇게 하라면 하겠는가?

개똥녀, 철사마... 등의 문제는 개인정보가 너무나 쉽게 노출될 수도 있는 인터넷환경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이것의 해결법은 오히려 그러한 "개인 인증"절차를 더더욱 줄여서 정보의 노출이 쉽지 않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글 하나 쓸 때마다 주민번호를 입력하라고? 미쳤냐?

위의 두가지 예만 봐도 실명제가 무슨 "전가의 보도"마냥 휘둘러댈 수있는 놈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잘 짜여진 시스템에서 정말 최소한의 용도로 사용된다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일리있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보호의 대상"이 "정치, 정치인"이라고? 이건 전두환의 '체육관선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짓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26일 자유언론인협회 출범식에서 전여옥씨가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포털에 진지를 구축해 놓고 2007년 황색바람을 몰고 올려고 한다는 얘기를, 정치인들이 네티즌을 보는 수준이 딱 이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얼마나 국민을 우매하게 봤으면 이따위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낼 수 있을까? 

'어차피 정치뿐인데, 나는 정치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데, 정치관련 글에만 실명제 적용한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어차피 아무상관없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권력의 속성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러한 생각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권력의 속성상 통제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정치관련 글만, 선거운동기간만이지만 이는 순식간에 확장되어 곧 한국의 모든 네트워크는 실명인증 없이는 접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현행 공직선거법보다 더욱 포괄적인 실명제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았으며, 현재 계류중이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검은 음모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6/04/28 22:49)

StopCrackDown 5주년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6:37

StopCrackDown보컬 미누(네팔), 기타 소모뚜, 베이스 소띠하 (이상 버마), 건반 해리 (인도네시아), 드럼 박상훈송명훈 (한국)으로 구성된 5인조 다국적 밴드입니다. 영어에 밝으신 분들은 바로 알아보시겠지만, 이들 밴드의 이름인 StopCrackDown"강제추방을 멈추어라" 라는 뜻으로, 한국인 박상훈씨를 제외한 4인의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밴드입니다. 그 결성일이 지난 2003년 11월 15일,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반대와 전면 합법화를 위한 농성장에서 결성된 밴드입니다.

지난 11월 9일 (일) 홍대 앞 롤링홀에서 손현숙씨와 함게 하는 5주년 기념 인권콘서트 (어느 글에서 봤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콘서트 앞에 '인권'이라니, 역설적으로 도대체 얼마나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은지를 알려주는 콘서트 제목이라고나 할까요...)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회사 동영상팀과 함께 촬영을 위해 방문했었지요. (결국 표는 사지 않았습니다. 대신, 음반은 샀으니까 봐주세요...^^)

당일 영상을 함께 간 울 회사 동영상팀이 찍어주셔서 지금 영상제작작업 중이니까, 다 만들어지면 이곳에도 공개할께요. 일단은 글로만 당일 콘서트 분위기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전에 노동넷 창립 10주년인가... 암튼 그때 한번 공연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당일 공연은 MR에 맞춰 노래만 부른 자리였으니까, 실제 연주와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대의나... 뭐 그런 것에는 공감하였지만, 실제 연주 및 노래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 예상을 뛰어넘는, 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뭐, 벌써 2집까지 낸 프로페셔널 밴드입니다. 곧 공개될 동영상을 통해서 실력을 충분히 파악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성훈송명훈씨 (아... 이름이 맞는지 왜인지 계속 불안한 이 기분... 어쩌면 좋을까요... 혹시 밴드관계자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혹 그 때 제가 이름을 잘못 타이핑했다면, 조용히 살짝 알려주세요...^^ 송명훈씨, 의도치 않은 성고문 및 명고문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슴 올립니다...흑...) 를 제외한 4명의 맴버들은 모두 현직 노동자입니다. 모두들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짬짬히 시간을 내어 이런 멋진 연주를 보여주고 계신 분들이죠.

일반 직장인이라고 해도 힘든 일일 텐데, 다른 사람들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멋진 공연을 보여주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맴버분들이지만, 이 외에도 상당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보컬의 미누씨(위 사진에서 가장 키 작으신 분, 왼쪽에서 두번째입니다.)이주노동자방송 (www.mwtv.kr) 대표직을 맡고 계시며, 기타의 소노뚜씨(미누씨 바로 뒤에 서 계신, 사진 좌측 첫번째)는 버마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서도 또 다른 밴드활동을 하고 계시며, 베이스의 소띠하씨(왼쪽 세번째, 사진에서는 상당히 단정한 머리를 하고 계시지만, 당일 공연에서는 노홍철 스타일의 노란머리를 보여주십니다...^^)는 한국인 여성분과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키우고 계십니다. 드럼의 박성훈송명훈씨 (왼쪽에서 네번째, 현재 대학원 학생이...시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는 최초 드럼을 맡으셨던 코네아씨(버마)의 대타로 투입되셨다가 지금은 정식맴버가 되신 분입니다. 당일 공연에서 건반의 해리씨(인도네시아)는 고향에 일이 있어서 대신 뇌태풍 밴드(http://noitypoon.com)오세헌씨가 객원맴버로 투입되셨습니다. 보는 사람들까지 흥겹게 만드는 즐거운 연주를 보여주셨습니다...^^

11월 9일 당일은 노동자대회가 있었던 날입니다. 거기다가 오전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살짝 되었는데, 다행히 약 100여석의 자리는 거의 채워졌고, 공연 역시 멋지게 끝났습니다. 중간중간 이주노동자방송국이 마련한 영상자료가 상영되는 부분에서는 이따금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특히 박노해씨의 시에 영상을 붙인 "손무덤"영상은 정말 뭔가 계속 울컥하게 만들었다는...), 위에 붙여넣은 음악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전반적으로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밴드 맴버분들 역시 메시지는 무겁지만, 경쾌한 음악을 우선 들어달라며 중간중간 숙연질 수 있는 분위기를 즐겁고 경쾌하게 가져가기 위해 간단한 농담들을 섞어가며 진행해 주셨습니다.

공연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영상 나온 다음에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혹 이 밴드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StopCrackDown 공식 홈페이지 : http://www.stopcrackdown.com/


영상 업데이트했습니다. 이곳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8/11/17 23:16)

"촛불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 정신병자군의 생각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6:03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386세대 전반에 개혁진영 패배라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실패는 진보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진보정치의 좌절이라는 깊은 트라우마를 만들어냈다.

그뿐인가. 한총련 운동의 실패는 현재의 20대들과 대학생들에게 진보적 운동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 모순이 아무리 깊어져가도 이들이 행동에 나서기는 어렵다
.
그러나 현재의 10대들은 이런 좌절과 패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로지 옳고 그름의 구별이 존재하며 이러한 인식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정치적 경험의 차이가 바로 청소년들을 즉각적 행동전으로 나서게 만든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

중고생의 진출은 각계각층의 진출로 이어졌다. 20대 대학생들이 동맹휴업을 결의해내며 거리에서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고 30~40대 넥타이 부대들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녀노소 구별 없이 100만의 촛불이 물결을 이루며 지난 10년간 반복된 좌절과 분열, 패배의 상처를 씻어낸 것이다. 결국 중고생들의 진출은 곧 10대의 순수함으로 기성세대의 트라우마를 치유해낸 과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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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트라우마 치유한 촛불, 가해자는 치료 불가?  오마이뉴스 (
김문주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촛불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19일과 20일의 토론회에 병자군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촛불문화제(집회)의 가장 큰 의미는 대단히 다양한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조율하며 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하나의 "협력 게임"의 룰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룰의 연장선에서 자격없음을 부끄럽게 고백하며 동시에 병자군의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남겨 보고자 한다
.

촛불문화제는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고등학생, "트라우마"가 없는 10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실패한 진보의 트라우마,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렇게나 반대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가 600만표 이상의 차이를 벌이며 '압승'을 거둔 모습에 질린 진보 성향의 기성세대들이 과거 실패의 상처에 의해 스스로를 검열하고 움츠러들고 있을 때,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없는 10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새로운 정부의 이슈를 만난 다음 '즉각적 행동전'에 보다 빠르게 돌입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위에 인용한 기사의 전반부를 구성한다
.

위 기사에서는 결론 부분에서 이러한 '민중의 힘'의 발현이 기존 진보 성향 기성세대의 트라우마를 치료해 주고 있다고 얘기하고, 또한 극우, 즉 한나라당 등 과거 트라우마의 가해자들은 전혀 치료되지 못하는 듯 보인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병자군의 관점에서는 6.10 이후 확연히 줄어든 촛불집회 규모와 더욱 거세진 극우세력의 반격을 보면서 까딱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 지금의 10대들에게까지 패배주의, 체념주의, 순응주의 같은 씻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심어주게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다라고 생각한다
.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병자군은 촛불문화제는 최초 직접행동에 돌입한 10대들에게 스스로 원하고 행동하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최초 이야기했던 슬로건인 미친소 미친교육부분에 더욱 강력하게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의한 트라우마가 지금의 대통령과 지금의 초거대 보수여당을 만들어 냈다라는 것이 병자군의 생각이고, 이 생각을 확장하면 다음 국회의원 및 대통령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 되어 있을 10대들에게 지금 실패의 트라우마를 남겨 준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최소한 지금 수준의 천민자본주의, 아니 오히려 더욱 강화된, (약간의 감정을 섞어서) 등신자본주의를 구가하는 정부 및 의회가 될 개연성을 극대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

따라서 병자군은 이후의 촛불집회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최초 10대들이 외친 구호인 미친소, 미친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온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성세대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기 위하여 정권퇴진의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라 향후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10대들에게 보다 많은 가능성을 심어주기 위해서 10대들에게 최대한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그 과제의 달성 이후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다른 활동을 벌여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촛불이 나아가야 할 길" 이라고 생각한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8/06/21 02:53)

촛불집회의 성격에 대한 짧은 단상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6:00

오늘 6.10 촛불문화제 도중, 아무 생각없이 행진을 하고 있다가 행진의 맨 앞에서 나부끼고 있는 깃발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명칭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황우석교수 지지모임'의 깃발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솔직히, 정말로 발길이 우뚝 멈춰버렸다. '내가 이 행진에 계속 참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병자군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행진 초기에 한 시위참가자가 공공노조 깃발을 손으로 나꿔채며 깃발을 치울 것을 격렬히 항의하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내비두고 이리와라~" (병자군의 느낌에는, 마치 저것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뒤에 붙어서 따라오건 말건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있으나 없으나'한 존재이니까 그냥 무시해 버려라, 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이었기에, 병자군의 개인적인 취향, 정치적 성향에 관계되는 의문이겠지만, '아니, 노조깃발은 용인 못하는데 저 깃발은 용인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분 정도, 행렬을 빠져나와 인도에 서서 지나가는 모임들을 찬찬히 흩어보았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깃발들이 지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다양한, 평소에는 전혀 섞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곳들이 서로의 깃발을 들고 한 대열 속에 섞여 있는 모습, 사실 극도의 '엘리트주의자'이며 '이념적 순혈주의자'인 병자군으로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런 믿기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만큼 이 촛불문화제의 초기 동력이며 가장 유력한 동력인 '미 쇠고기 수입' 이슈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념적으로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사람(단체)일지라도, 그야말로 '초딩'이 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한반도대운하 정도는 한번에 백 개 정도는 거뜬히 팔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삽질이라고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극도의 '엘리트주의자'이며 '이념적 순혈주의자'인 병자군의 입장에서, 여전히 이해가 힘든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긴 하다.

6.10
이후 지금처럼 분위기가 계속해서 고조되는 현상은, 최소한 그 상승폭만큼은 서서히 줄어들지 않을까, 라고 병자군은 생각한다. 새드개그맨님의 팟케스트 Forget the Radio 053. 촛불시위 정국은 어디로? 블로거좌담회 (1)에서도 보이듯이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나올 사실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점, 아직 6.15 효순미선사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6.10 민주항쟁만큼의 공통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좀 약한 계기라고 판단한다는 점, 촛불문화제의 주최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일정안내에도 6 10일 이후에는 아직 특별한 일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 또 개인적으로는 이젠 일정한 강박으로까지 느껴지는 "평화"라는 구호의 힘에 의해 점점 흔히 말하는 '휘발성'이 배재되고 있다는 점 등이 병자군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이다. 그렇지만, 특히 오늘 집회의 규모나 특히 '명박바라기' 같은 이명박 지지모임도 지지철회를 고려하고 있으며  친박모임이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상황까지 이른 지금에는, 이 시위는 어떠한 형태가 되든지 일정수준 이상의, 일부의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병자군은 크게는 하나로 연결된 두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럼 그 성공은 어느 정도 수준의 성공이 될 것인가?"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성공 이후, 그러한 성공의 경험이 이 사회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다.

비록 찬찬히 흩어보지는 못했지만 병자군의 짧은 관찰을 통해 발견한 촛불시위 참여단체의 그 다양한 구성 및 그로 인한 이념적 스팩트럼의 수준을 고려할 때, 그 성공의 수준은 작게는 '고시 철폐 및 쇠고기 재협상'일 것이고, 크게는 '이명박대통령의 하야'일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고시철폐 및 쇠고기 재협상 수준에서 일정수준 이상 수습이 될 것으로 보이고, 조중동 불매운동은 딱히 성공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에서 수습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병자군이 보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답안이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한 답안은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가 있어서 쉽게 추정하기 쉽지 않으나, 적어도 병자군이 가지고 있는 가치 실현에 이 성공의 경험이 어떠한 작용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병자군의 답안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병자군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북유럽형 복지 지향의 수정 사회주의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초기 촛불문화제에서는 한쪽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또 다른 쪽에서는 서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끼리 상당한 수준의 토론이 벌어지고, 또 그러한 토론이 상대방의 입장을 큰 목소리, 많은 쪽수 등으로 깔아 뭉게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난 다음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가치관이 서로간의 타협점을 어떻게든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이 보였고, 병자군은 그러한 모습들이야말로 차이를 상호 이해한 상태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형태의 '생활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니, 12시가 지났으니 어제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관찰된 모습은 차이의 '인정',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한 '타협'이 아닌, '저놈들과 나는 별개, 저놈들이 뭔짓을 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음, 따라서 관심없음, 무시'의 형태로 다가왔다.

사실 병자군 역시 황우석 지지모임의 깃발을 보고 솔직히 그러한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병자군은 지금 '왜 어제의 그 상황에서 그렇게 반응했을까, 왜 병자군은 스스로의 가치를 배반하는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일까.' 생각하며, 병자군의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그 나무의 가지 하나만 보고 전체를 평가한 스스로의 모습에 반성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현재 촛불집회에 저마다의 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든 단체 및 개인들도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집회 안에 이렇게 다양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차이들과 어떻게 타협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모여있는 이 같지만 다른 큰 덩어리들이 예정된 성공의 열매에 취해 서로를 차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반목하고 다투고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저 보수언론들이 쏟어내는 '사회적 불안 예상됨'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되고, 이는 '역시 저들이 선견지명이 있었어'라는 형태의 또 다른 보수 이데올로기의 득세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병자군의 개인적인 추천글 : 미디어오늘, 포스트모던 시위의 너무나도 분명한 한계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8/06/11 02:06)

"Operation Human Shield"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56
얼마만의 새 글인지 모르겠지만... 본래 오래 쉬다가 하는 행위는 되도록 가벼운 몸풀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병자군의 오랜 신조입니다. 함량미달의, 주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기 힘든 난삽한 글이 되어 버린 감이 있지만, 이제는 좀 "쓰기"시작해야겠군요...^^

병자군의 인생을 결정지은 주요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는 "사우스파크"의 1999년도 극장판 "South Park - Bigger, Longer & Uncut"중에 보면 "Operation Human Shield"라는 작전이 나온다.

캐나다 코미디언 콤비 "테렌스와 필립"이 자신들의 자녀를 더러운 욕쟁이로 만든다고 생각한 PTA의 압력에 의해 미국은 캐나다와 전쟁을 선포하게 되고, 그 출정식에서 약 1/4를 차지하는 흑인 병사를 위해 마련된 이 작전은, 아래 이미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에니메이션에서 흑인 병사들은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탱크와 비행기를 보호해야 한다.



밑도끝도 없이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 5월 30일 금요일 촛불시위 도중에 있었던 한 일이 갑자기 떠올라서다. 그날 문화제를 끝내고 거리행진을 시작한 시위대는 시청앞에서 경찰의 저지선에 가로막혀서 대치하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저녁 10시 20분경에서 새벽 1시 30분까지 이어진 이 대치국면은 다음날의 행사를 앞두고 시민 부상 등 불상사를 막고자 했던 주최측인 광우병대책협의회의 경찰측에 대한 끈질긴 협상과 시위대에 대한 설득으로 서서히 소강국면을 맞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병력의 전진에 맞추어 천천히 저지선을 후퇴시키던 예비군들도 시청앞 광장 쪽으로 물러서고, 그 흐름에 맞추어 시위대도 서서히 시청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때 예비군저지선의 느슴해짐을 틈타 경찰은 일반차량들을 주행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한 시위대인원과 좌측 인도 가에서 시청광장 쪽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차량과 순식간에 얽히며 상당히 위험한 순간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몇몇 시위대는 지나가던 민간인차량의 진로를 가로막으려고 도로로 뛰어들고, 또 다른 몇몇은 경찰의 이 어이없는 행동에 크게 분노하며 민간차량 틈에 끼여서 주행하던 경찰차 앞을 가로막고 항의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차피 민간인차량, 이 대치국면은 처음부터 시위대가 이길 수 없으며, 이겨서도 안되는 싸움이었다. 결국 좌측 인도쪽 시위대와 시청광장 쪽 시위대는 차량통행에 의해서 분리되게 되었고, 잠깐 담배한대 피우기 위해 대오에서 이탈해 좌측 인도에 서 있던 병자군은 다시 시청앞 광장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 물론, 지하도로 차도를 건너서 이동하면 되는 상황이긴 했다. 이 상황에서 병자군이 집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갑가지 갑자기 차를 보내서 못 건너갔다, 라는 얄팍한 핑계를 대고 있긴 하지만, 단지 피곤했고,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때문이다.)

이 두서없는 글의 서두에서 얘기한 "Operation Humen Shield"는, 이 경우의 민간인 자동차에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병자군은 생각한다. 아무리 경찰의 행동이 어이없는 짓이었다고 해도, 민간인 자동차를 상대로 시위대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이용한 전술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보다 넓게 적용한다면, 전경 뒤에 숨어서 말도 안 되는 선무방송이나 해 댔던 경찰서장 역시 전경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식으로 개념을 점점 확장하면 최종 지점에는 이번 잘못된 협상의 책임자급, 더 나아가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민노씨가 관련 포스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저 싸가지없는 전경"새끼"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과는 별개로 그들 역시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희생자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얘기한 에니메이션에서, 그 '흑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캐나다를 침범하는 미국 군대의 최전방에 말도 안 되는 작전 때문에 서 있다고 해서, "역시 흑인 새뀌들은 더럽고 상종 못할 족속들이야"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오해일 뿐일 것이다.

사족 : 물론, 예의 "South Park - Bigger, Longer & Uncut"에서 흑인들은 앞에서 백인들의 총알받이가 되어 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싹 비켜버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우리 경찰들도 그러한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야 생각하지만... 혹 전경들 중에서 이러한 시위 진압작전의 참가를 거부하는 '양심선언자'는 아무도 없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는 한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8/06/03 00:29)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고 싶다.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49

이번 대통령선거는, 개인적인 견해에서, 역대 최악의 선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지난 총선, 지자체선거, 보궐선거 등을 겪으며 공통적으로 들었던 생각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선거라는 것이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이 아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지극히 우울하기 그지없는 일로 돌변해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차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선거라는 의미는, 어떠한 후보를 선택하든지 간에 어차피 더 좋아질 리가 없다라는 채념의 심리에 기반한다. 개선의 희망이 없는 어떠한 제도에 대한 참여라니, 정치불감증을 넘어 냉소증, 혐오증까지 이르렀다는 일반 국민의 심리상태를 명확하게 반영하는 절망의 행진일 뿐이고,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정치세력 전반에 대한 거부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약 2시간 전, 병자군은 '그나마 가장 낫다'라고 생각하는 한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나서 '왜 병자군은 결코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는 후보에게 내 표를 준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요소요소 중요한 고비마다 때마친 초대형사고가 터져주어 '하늘이 내린 대통령'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는 모 후보, 그저 그 모 후보를 잡아 끌어내리는 것만이 자신의 살 길이라는 듯이 자신이 왜 되야 하는지에는 관심없고 그가 왜 안 되야 하는지에만 온 힘을 집중한 또 다른 모 후보 등 대통령 후보가 아닌 정치인, 사회인의 기본적 자질마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후보들의 정책이나 발언을 아무리 유심히 흩어봐도 병자군은 '최선'을 물론이거니와 '차선'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 역시 찾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그 후보 역시 몇가지 부분에서는 내 삶 또는 이 사회를 더욱 좋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떠한 부분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부분도 존재하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현 상태의 유지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정도의 평가 이상은 (적어도 병자군에게는) 불가능한 후보이다. 즉, 병자군은 고작해야 '현상유지' 정도의 비젼을 가지고 대통령을 결정한 것이다. 왜 이러한 후보들만 나온 것인가? 이런 후보들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데, 이런 '허접한' 답들 중에서 무조건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것은 무언가 불합리하지 않은가? 이러한 보기를 제시한 정치 세력들에게 보기 자체를 다시 만들라고 되돌려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서론이 길어졌는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정치 세력들이 내놓은 보기 전체를 거부하고자 하는 병자군의 개인적인 욕망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병자군이 생각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지금의 투표형태는 일정수의 답안을 그냥 던져놓고 '반드시' 그 중에서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 답안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 중에서 도저히 최선은 물론이고 차선조차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나는 투표에 참여할 의지는 있지만, 지금의 후보 중에서는 내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 하였으므로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 라는 의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답안의 비율을 토대로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닌 '정치세력 전반'에 대한 국민의 평가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정치 세력들이 만들어낸 구조 자체를 거부하는 실질적인 국민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 참여할 의지는 있지만, 미리 준비된 답안들에 대해서는 거부할 권리, 진짜 국민이 주인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러한 "정치 카르텔"에 대한 견제장치를 국민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정말 필요할 일이 아닐까? 입으로만 진보니, 평화세력이니, 경제대통령이니 부르짖으면서 막상 실제 정책들 간 차이는 거의 없는 이 이상한 선거구조, 병자군은 정말로 이 이상한 선거구조 전부를 "정당하고 명확하게" 거부하고 싶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7/12/19 14:44)

아무리 인용과 재인용의 시대라지만...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45
기사 원문 : 미디어오늘, 조선 중앙의 낯뜨거운 외신 인용보도

자세한 내용은 위의 기사원문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조선일보가 27일 쓴 사설을 28일 파이넨셜타임즈가 인용, 보도합니다. 이것을 같은날 이데일리가 외신인용으로 보도하고, 이데일리의 인용기사를 다시 조선닷컴이 같은날 인용 보도하고, 30일에 중앙일보가 또 이것을 인용 보도하고.....

같은 기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인용에 재이용을 거듭하는 그 행보도 우습지만, 진정한 코미디는 그것이 아닙니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원문기사에는 조선의 사설 중 일정 부분을 인용하면서 "조선일보 인용"이라고 명시한 기사를 생산했는데, 이것이 이 기사돌리기 과정에서 누락된 것입니다.

이데일리의 최초기사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삼성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을 부패했다고 인식하면서 한국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해 관계를 끓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 이데일리 기사 원문보기, 오타가 있지만(끓을 --> 끊을) 기사 원문을 존중하여 그대로 전제합니다)

이 해당 기사는 그대로 전제되어 조선닷컴에 실립니다. (조선닷컴의 기사 보기)

사실 여기까지는 불만을 제기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당 언론사들이 전혀 할 말이 없는 상황도 아닙니다. 기사를 쓴 이데일리야 자사도 아닌데 인용했다는 것만 알리면 됐지 굳이 어느어느 신문에서 인용했다고 밝힐 필요가 있냐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조선닷컴은 기사 자체는 이데일리가 만든 것이고 자신들은 그저 "유통"만 했을 뿐이니까 우리까지 싸잡아서 뭐라 그러지 말라라고, 한국 포털들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위대하신 이건희회장님의 탁월한 영도력 하에 '무늬만 회장' 홍석현회장 이하 모든 임직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열과 성을 다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삼성만세'를 외치시는 우리 중앙일보는 아예 '인용'이라는 말 자체를 빼 버립니다.

FT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삼성의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로 투명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생각한다면 다른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로 투명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중앙일보의 기사보기

이부분은 좀 심각하지요. 위의 인용에 푸른색으로 강조된 부분은 조선일보의 27일자 사설을 FT가 인용한 부분인데, 이 글만 읽어보면 이것이 FT의 진단이라고 판단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뭐, 자기들 기사는 이런 식으로 쓰면서 포털들에게는 저작권이 있으니 7일 이상 보관하지 말아라, 스크랩 못하게 하라, 기사 가져갈려면 돈 내고 하라 (중앙일보의 콘텐츠 몰 가격정책 바로가기, 중앙일보는 블로그나 카페에 자사의 기사를 가져가는 행위에 대해서 돈을 요구합니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아니, 저들의 '지멋대로 해석하기'는 워낙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통이니, 이해는 충분히 갑니다. 다만, 용서는 안되는군요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7/11/30 11:45)

'어떠한 영화 '를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28
바로 전 포스트에서, 병자군은 '어떠한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듯한 제목으로 그 영화를 예매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바로 이전 포스트의 입장을 변경하여, 병자군은 그 영화를 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을 이렇게까지 악감정에 빠뜨리는 어떠한 상품을 소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당 영화에 대한 몇몇 평/댓글들을 접하면서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을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그 정도의 저주를 퍼붓게 만든 그 영화는, 영화 자체가 어떠한 성격을 가졌든지, 영화와 상관없는 어떤 요인에 의해 그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든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돈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주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병자군 혼자의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2. 해당 영화가 프로파간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인 평들을 종합해보면, 이 영화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그렇다고 과거 심형래감독님이 출현하셨던 영화들만큼 저연령의 아동을 겨냥하는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플롯의 허술함에 대해 지적하는 얘기에 대해  '어린이영화에서 너무 자세한 서사를 요구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 것' 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화 말미에 삽입되었다는 심형래 감독님의 매세지를 텍스트로 읽어보았습니다. 매세지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일방적인 의사전달이라고 느낍니다. 본인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납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감독님 본인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웅변하고 있는 글이며, 반론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반론을 허용치 않는 글이, 어린이를 위한 영화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영화 보고 나온 어린이들에게 '내 영화가 지상 최고의 영화다 (내 영화 말고 다른 영화들은 쓰뤠기다)'라고 새뇌하기 위함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행동은 '프로파간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도 가장 저열하고 가장 비겁한 방식의 '프로파간다'입니다.

3. 원래 병자군은 '울트라 메가 와이드릴리즈' 방식의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한국 흥행순위 Top 10의 영화들 중 (한국영화가 아니고, 한국에서 상영한, 입니다.) 병자군이 극장에서 돈 내고 본 영화는 '왕의 남자' 한편뿐입니다. 그나마, 병자군은 정말 그 영화가 그렇게 흥행할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습니다.

병자군은 성격이 워낙 삐딱하여서 남들 다 보는 영화라면 나까지 볼 필요가 뭐가 있느냐, 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소수의 영화가 대부분의 스크린을 휘어잡고 다른 영화들은 아예 개봉할 기회조차 없게 만들어버리는 형태도 대단히 싫어합니다. 괴물과 한반도의 스크린 전쟁 때 전국 1500개 스크린 중 2개의 영화가 1200개 가까운 스크린을 점령했던 꼴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욕지기가 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병자군은 이 영화의 완성도든, 상업적 재미든, 모든 것을 떠나 전국 500개 이상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덧] 100분토론을 보고, 병자군과 병자군의 동생은 어떻게 서로의 생각을 전치당했는가?

- 보기전 -

병자군의 동생 : 해당 영화에 대한 열렬한 옹호, 그리고 그 반대세력에 대한 극렬한 거부감

병자군 : 영화에 대해서는 평가 유보 (그러나 보지는 않겠다고 결심), 동생의 생각에 심히 불쾌해하며 이따금 언성을 높이기도 함.


- 보고나서 -

병자군의 동생 : 평론가들 역시 자신의 논리에 의해 평가를 내린 것이지, 그 영화를 무조건 짓밟기 위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 아니겠구나, 라고 얘기를 함. 소위 "진중권빠"가 됨

병자군 : '도대체 영화가 어떻게 나왔기에 '서사가 없다'라는 평까지 하는 거야? 젠장, 어제 이 영화 안 보기로 공개적으로 선언해 버렸는데, 진짜 보고 싶어지잖아!!!!!'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7/08/10 10:03)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23
이 글은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네티즌은 찌질하다" 포스트에 대한 민노씨.네의  "찌질한 네티즌을 위한 변명", 그리고 다시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의 "블로거라는, 네티즌이라는 방패막이를 버리자"까지 이어지는 대화를 읽고 난 후 병자군이 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아니, 병자군의 생각이 아니고, 라캉의 상호작용과 상호수동에 대한 텍스트에 대한 얘기라는 편이 옳겠군요...)

1. 티벳의 "마니차"와 코미디프로의 녹음된 웃음소리

마니차는, 간단히 정리하면 "기도를 대신 해 주는 기계"이다. 기도문이 쓰인 종이를 원통 안에 넣고 돌리고만 있으면 원통이 당신 대신 기도를 해 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객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게 해 주는 시스템이다. (직접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긴 한데,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자동으로 돌라가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티벳인이 아닌 이 글의 독자가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거실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TV 코미디프로를 보는 것인데, 내가 굳이 웃지 않아도 해당 코미디프로의 녹음된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주는 효과, 즉 긴장의 완화를 느낄 수 있다. TV가 나를 대신해서 웃어주는 것처럼.

2. 상호작용과 상호수동

새로운 전자미디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의 출현은 텍스트나 예술작품에 대한 소비의 패턴은 점차 능동성을 더해간다. 프로그램의 선택, 논쟁의 참여, 심지어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쌍방향 서사'까지 소비자는 해당 텍스트나 작품과의 대화적 관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부분이 뉴 미디어의 민주주의적 잠재성에 대한 찬미의 첨단이다. 이 부분을 간단하게 "집단 지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부분이 상호 수동성인데, 단지 수동적으로 쇼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수동성을 갖는 것, 나에게서 수동성을 빼앗는 것, 그래서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쇼를 즐기고 자발적인 향락의 의무에서 해방시켜주는 상황이다. 병자군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방 한 구석에 수북히 쌓여 있는 드라마, 영화 등을 '구워 놓은' CD들인데, 해당 영상물은 반 이상 보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그 영화에 대해 얘기라도 할라 치면 괜시리 나서서 본 척, 아는 척 하게 되는 비루한  상황을 병자군은 가끔 연출하게 된다. 실제로는 보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내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보지도 않은 영화를 잘 아는 것마냥 만족감을 느낀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병자군의 CD들은 상징적 등록의 매체로서 대타자의 역할, 즉 1.에서 언급한 마니타의 역할을 수행한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봤다며 아는 척 하는 병자군의 행동은 해당 화재를 꺼낸, 거의 틀림없이 해당 영화를 봤음이 분명한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이상 디테일한 얘기를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고자 하는, 그래서 병자군이 가지고 있는 만족감이 단지 '대리만족'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제 병자군'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대타자인 병자군'의 방어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행위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막기 위한 "가짜 행위"가 된다.

3. 가짜 행위

보통의 경우, 사람들의 행동은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함이지만 (그렇게 보이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변하게 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금방 무슨 일 때문에 싸워서 서로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 친구들 사이의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침묵 상태로 인해 내재된 긴장을 대면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 침묵상태를 피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두 친구가 실제 싸움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피하기 위한 행위이다.

4. 대타자 뒤에 숨은 내면

유명한 인류학적 일화에 따르면, 자신의 새의 후손이라고 믿는 한 원시부족에게 '정말 그렇게 믿느냐'고 물어봤을 때, 그들이 한 대답은 "물론 아니지요, 난 바보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조상들 중 몇몇은 정말 그렇게 믿었다고 하더군요."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을 다른 어떤 것 (이 경우는 조상, 만일 위의 경우에 제사, 차례를 대입한다면, 전통 문화 등등...)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은 "고상한, 이성적인, 기타 등등..."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고상한,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투사하기 위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무엇인가에 투영해 객관화시켜 버린 것일 수 있다.)

병자군은 종종 PC통신 시절, 또는 이 정신병동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실제 아이덴티티'가 통신상, 또는 웹 상에서 보이는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통신으로만 알던 병자군을 실제로 만나게 된 상대방이 '이런 사람일 줄 정말 몰랐다' 며 더더욱 놀라워하경우가 훠얼~씬 더 많긴 하다...-_-;;;) 그들에게 있어 웹 상에서 노출하는 정체성은 (병자군이 인터넷 정신병동에서 노출하는 정체성은) 위에서 믿음을 투영한 어떤 것 같은,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에고'의 압박에서 벗어난 '순수한 이드'가 아닐까? 그러한 순수한 이드가, 그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라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이드의 성격에서도 보여지듯이, "찌질함"이라는 것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5.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라캉의 텍스트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해설에 따르면, 오늘날 진보 정치의 많은 부분에서 직면하는 위험성은 수동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능동성, 즉 활동과 참여의 몰입에 있다고 얘기한다. 그 근거는 위의 3.항에 제시한 가짜 행위에서 찾고 있는데, 즉 스스로를 활발한 참여자라고 생각하고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위에 얘기한 가짜 행위, 즉 병자군이 실제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낼 핵심적인 질문을 정말 영화를 본 사람이 던지지 못하도록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보이는 아무 얘기나 마구 떠들어대는 식의 행동을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일견 나름의 분석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병자군 역시 특히 지금 '디 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들이 짜증스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지능형 안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당 영화에 대해 찬양 일색의 얘기만 늘어놓는 포스트/댓글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영화에 대한 무슨 신앙고백에 가까운 어떠한 글은 너무나 짜증이 나서 주말에 예약한 표를 확 취소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영화 개판이라고 깎아내리는 포스트/댓글 역시 정말 뭐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 것 역시 사실이다. (병자군이 이번 주말에 '디 워'를 봐야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렇게 온갖 저주를 퍼부어놨는지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양자의 경우, 모두 결국 상황을 바꾸어놓지 못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악평'을 쓰는 이유가 그 영화를 많은 사람이 보게 않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을 것이라는 병자군의 해석이 사실이라면, 어떤 영화에 대한 저주글은 원래 별 생각 없었던 병자군을 결국 8,0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영화를 마침내 '보도록 결심'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그 반대의 경우인 '신앙고백'의 경우, 지금도 병자군은 '예매취소'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더 '희생'되는 사람을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진 글은 한명의 예비관객을 만들었으며, 한 명이라도 더 '축복받게'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진 글은 한 명의 예비관객을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지금 시점에서, 병자군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병자군은 이번 주말에 그 영화를 보러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약 4~5시간의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여 정보들을 모은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도대체 정보라는 것이 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인가?

위에 주저리주저리, 여기저기 책에서 읽은 얘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논리의 전개대로라면, 집단지성의 발현을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진짜 행위와 가짜 행위를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은 '아레오파기티카'에서 "모든 주의와 주장을 이 땅위에 자유로이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면 진리도 거기에 있을 터인데, 허가를 받게 하고 금력으로 금지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부당한 일을 하고 있다. 진리와 거짓이 서로 다투게 하라. 어느 누가 자유롭고 개방된 대결에서 진리가 패배하리라고 보단 말인가?" 라고 쓴 바 있다. 병자군은 이 말을 정말 좋아하고, 앞으로 하는 모든 일에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싶다. 그러나 또한 한편에서는 이러한 이상론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과연 정말로 이러한 이상이 현실로 닥쳐온다면, 타인은 고사하고 과연 병자군은 스스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포스트는 상당부분 웅진 지식하우스 출판의 "How to Read - 라캉" (슬라보예 지젝/박정수)를 참조한 글입니다. 해당 텍스트를 읽어보시면 이 부족한 포스트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얘기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7/08/06 23:31)

[Movie preview] 샴 - "분리수술만이 해법이군."

이전 정신병동 글들 2010. 5. 11. 15:17

영화 : 샴 (Alone, 2007)
감독 : 반종 피산다나쿤, 팍품 웡품
출연배우 : 마샤 왓타나파니크, 라차누 분추총
상영정보 : 2007년 7월 17일 개봉
영화장르 : 공포, 스릴러

줄거리

샴쌍둥이는 30%는 태아상태에서 죽고, 60%는 죽은 채로 태어난다. 오직 1%만이 분리수술에서 생존한다

샴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핌’과 ‘플로이’. 어릴 적 영원히 함께 하기로 약속한 ‘핌’과 ‘플로이’는 나이가 들수록 몸은 붙어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15살이 되던 해 1%의 생존율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분리수술을 강행한다. 하지만 ‘플로이’는 20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고 결국 ‘핌’만이 살아 남게 된다.

16년 후 남편 '위'와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핌'은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태국으로 돌아간다. 샴쌍둥이 동생과 어린시절을 함께한 집에 도착한 '핌'은 자신과 똑같이 성장한 죽은 '플로이'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 곁에 '플로이'가 계속 붙어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녀에게 끔찍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 출처 : 네이버 영화



"깜짝... 놀랄만두 하군...-_-;;;"

전작 '셔터'를 통해서 호러영화 특유의 관습적 트랩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를 선보였던 반종 피산다나쿤, 팍품 웡품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트랩을 다루는 재능이 녹슬지 않았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반 박자 정도 빠르게, 또는 느리게 발동하는 '깜짝 코드'는 왠만한 호러영화에는 놀라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사람에게도 일정수준 이상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된다.

호러영화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해당 영화에서 차용한 여러 영화의 코드를 발견하고 즐거워할 수도 있겠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설정으로 벌어지는 각종 장치들은 관객의 기대를 특정 부분에 집중하게 해 놓고 발동시점을 살짝 비틀음으로써 영화관 온 사방에 찢어지는 하이톤 비명을 흩뿌려놓는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깜짝 놀라고 말겠다, 라고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성 친구에 둘러싸여 영화를 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또한 남녀 주인공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간을 "한국"으로 설정함에 따라 감독은 전혀 의도치 않은, 오로지 한국 관객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의외의 코믹코드들이 긴장을 이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특히 한국의 여성 관객에게는 극대화된 '깜짝 놀라기'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해당 표현 속에 있는 여성비하적 발언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대체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으음... 단점을 보완할 생각은 없는 거냐?"

그러나 이 영화의 장점은 거기까지일 뿐, 모든 면에서 전작인 셔터에 상당히 못 미치는 졸작의 수준을 약간 넘어선 범작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스포일러 유출금지라는 거창한 서명서까지 받았다고 하는 이 영화의 반전은 의외로 쉽게 짐작 가능하다. 이 반전 부분은 관객의 좌측 전두엽 하단 13cm부위를 강타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이 반전 이전과 이후의 영화가 마치 신체 일부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딴 사람인 샴쌍둥이처럼 시간적으로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반전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영화의 갑작스러운 변신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서 '혹시 감독이 몸은 붙어 있지만 다른 사고를 하는 샴 쌍둥이의 구조를 영화적 어법으로 재생하고자 이러한 장치를 마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급작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에이, 그럴리가 없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만큼 정말 무성의하게 이어져 있다.) 반전 이후의 영화의 흐름은 그 이전 능숙하게 배치된 장치들을 통해 빗어낸 감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아예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자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끝나기 바로 전에 서둘러 반전 이전의 흐름에게 화해의 악수를 보내보지만, 그야말로 공허한 헛손질에 다름아닐 뿐이다.

해당 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복선 쌓기 역시 너무도 취약하다. 나름대로 복선을 설정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몇몇 신경쓰지 못한 컷들이 오히려 반전을 예상했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병자군의 경우, 막상 반전이 공개된 다음에도 그러한 컷들이 눈에 밟혀서 혹시 또 다른 반전이 있나,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그러한 것은 없다.)


"데뷔작 만들 때의 그 성실함은 어디에 두고 온 것인가?"

셔터 개봉 당시 시네 21의 기사를 보면 이 두 감독은 당시 가장 공을 쏟은 공정은 스크립트엿다고 한다.  

“주인공이 버려진 폐허에 들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든지, 굳이 열 필요가 없는 문을 따고 들어간다든지 하는 장면들은 넣지 않았다.”

셔터에 포착된 핏빛 과거, <셔터>  중에서,             - 씨네 21 / 이영진기자
샴을 만들면서 두 감독이 보다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일관된 흐름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마치 따로 찍은 두 개의 영화를 적당히 붙여 놓은 듯하다. (감독이 둘이라서 그런가?)

링크된 기사에서 이영진기자는 셔터의 매력을 "깜짝 충격 효과만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지 않고 꼼꼼한 드라마투르기를 통해서 <빈 집>의 호러 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장면까지 힘을 잃지 않고 보너스로 공포를 안긴다."라고 평하고 있다. 같은 어법으로 샴에 대해 언급하자면, 샴의 치명적 오류는 "어설픈 반전을 통해 오히려 잘 짜여진 깜짝 충격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공포감을 감소시키며, 영화의 주제를 사라지게 만듦으로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마침내 짜증을 유발시킨다."

정신병자군의 정신나간 정리

"여자친구를 품에 안고 다독여주고 싶다고?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서 예매하라구!"
"무슨 일이 있든지 깜짝 놀라고 싶다고? 깜짝 놀랄 기회는 많은 편이야. 다만, 반전이 공개된 다음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자라고 권하고 싶어."
"호러영화를 통해서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트라우마를 확인해보고 싶다고? 땅을 파 봐라, 7000원은 고사하구 10원도 안 나온다!"



※ 정신병자의 인터넷정신병동 과거 버전에서 가져옴. (원문 포스팅 일시 : 2007/07/13 00:40)